정의의 유형 분류 중.

음... 역시 본질적인 내용에 의심이 간다면, 맨 처음부터 다시 질문을 던지는 것이 좋은 거였다.
나는 이 책을 통해 올바른 정의를 세우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를 하려 했다.
하지만 대저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해서 스스로도 애매하게 생각하는 점이 있었던 게 사실이다.

내 나름대로 생각하는 정의론이라는 것을 이야기하기는 했지만, 이게 너무 애매한데다 고집스럽기까지 해서 말이지.
여튼 만형과의 대화를 통해 얻어낸 바가 있었다.
(언제나 그렇지만, 진지한 대화에 감사를.)
이전에도 이 문제에 대해 생각했던 적이 있었지만, 해석을 잘못 했었던 거다. 음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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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들은 왠지 억울하다.
세상에 대해 알면 알수록, 세상은 불합리함으로 가득차 있는 것만 같고 정의롭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는 것만 같다구.

이전의 나는 그것이, '입법과 사법의 정의 / 생활에서의 정의'가 다르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어.
사람들마다 생각하는 정의가 다 다르지만, 입법의 정의와 사법의 정의가 그것을 쫓아가지 못한다고만 생각했지.
하지만 마음속 어딘가에서는 그것을 모두 초월하는 하나의 정의가 있었으면 했고, 그것을 실현하지 못하는 인간 사회가 안타깝기만 했다.

하지만 말이지... 수천년동안 사회를 연구해왔던 인류가 아직도 그 답을 못 찾을 정도로 멍청하지는 않았던 것 아닐까?
내가 지금의 사회를 부정해 버린다면, 인류의 정체성 자체를 부정해 버리는 꼴이 되지는 않을까?
내가 얼마나 잘났다고, 지구가 굴러가는 원리를 알고 있는 양 떠벌이려는 것인가 말이다.

그러던 와중에 한 가지 생각이 머리를 스쳐갔다.
어쩌면, 정의 자체가 틀린 게 아니라 정의에 대한 개념 정리가 틀린 것은 아닐까?
아니, 틀리지는 않더라도 말이지... 서로 연결지을 수 없는 개념들을 하나로 묶으려고 노력하기 때문에 그 안에서 모순이 생겨나버리는 것은 아닐까?

사실 생각해보면, 내가 이 책에서 하려는 그 수많은 이야기들조차 세상의 모든 정의를 설명하지는 못한단 말야.
나 스스로도 도대체 정의란 개념이 무언지 감을 잡기 힘들었으니까.



그래서 한 번 정의의 형태를 분류해 보기로 마음먹었다.

이렇게 분류해보는 건 어떨까?
1) 관념적 정의
2) 원칙적 정의
3) 행동적 정의

이야기를 쉽게 하기 위해 예를 하나 들어볼까?
A라는 사람은 너무 가난해서 자식에게 먹일 게 없자 빵가게에서 1만원어치 빵을 훔치다 잡혔어.
B라는 사람은 주머니에 담배값이 없자 구멍가게에서 담배 4갑을 훔치다 잡혔지.   
이 사람들에게 얼마만큼의 벌을 주는 게 좋을지를 생각해보자.

1) 관념적 정의
이게 우리가 생각하는 일반적인 의미의 '정의'라는 거야. 말하자면 '인간으로서의 당연한 도리'라고도 할 수 있겠다.
"서로 사랑하며 삽시다"라던가, "나쁜 짓을 하지 맙시다"라던가, "약한 사람을 배려합시다"라는 식의 당연한 이야기들이야.
세부적인 모양새나 항목의 중요도 정도는 조금씩 달라졌을지 몰라도, 이 관념적 정의의 모양새는 인류가 생긴 이후로 지금까지 크게 달라진 것 같지는 않아.

관념적 정의에 따르자면, A는 B보다 적은 처벌을 받거나 아예 처벌을 받지 않는 게 당연해.
이유를 숫자로 정확히 증명할 수는 없지만, 대부분 그렇게들 생각하잖아?

2) 원칙적 정의
이건 관념적 정의하고는 달라도 크게 달라. 말 그대로 '원칙'이거든.
원칙적 정의라는 건 대부분 잘못을 저질렀을 때 벌을 주기 위해 존재해. 그래서 바꾸어 말하자면, '법적인 정의'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아. 법은 말이지, 피도 눈물도 없거든.
하지만 사회를 굴려나가려면, 이 원칙적 정의는 꼭 필요해.
사고를 치는 것도 사람이지만 그걸 처벌하는 것도 사람인지라, 이게 없으면 처벌이라는 게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식으로 되어버리기 마련이거든. 게다가 처벌하는 사람이 사고를 친 사람과 한 패가 아니라는 보장이 어디 있겠어?

원칙적 정의에 따르자면, A와 B는 같은 액수의 물건을 훔쳤기 때문에 같은 처벌을 받아야 해.
실제로 그렇게까지 잔인하게 적용되지는 않는다구? 뭐, 원칙이 그렇다는 거야. 원칙이.

3) 행동적 정의
이건 위의 두 가지 정의와는 좀 성격이 달라. 
이건 말하자면 "행동 방침"을 이야기하는 거거든. 행동 방침이면 행동 방침이지, 거기에 왜 정의라는 말을 붙였느냐구?
그건, 이 행동적 정의가 "대외적인 행동 방침"이기 때문이야. 다른 사람들이 봤을 때 납득할만한 논리가 있어야 하는 거거든.
만약에 어떤 사람이 "세상은 돈이 최고다"라는 행동적 정의를, 또다른 사람은 "남을 위해 헌신하는 것이 최고다"라는 행동 정의를 갖고 있다고 치자구. 이건 두 사람의 행동적 정의이기 때문에, 그 존재 자체를 부정할 수는 없어. 하지만 둘 중 어느 게 더 설득력이 있을까? 음... 많은 사람들은 후자라고 생각하겠지만, 이건 그 사회가 합의 하에 결정해야 할 문제라고 봐 나는.
내가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는 바로 이 행동적 정의를 판단하는 방법이야. 위의 두 가지 정의보다 이게 더 조사하기 편하고, 원인과 결과를 증명하기 좋거든.

행동적 정의에 따르자면, A는 사회의 생존력을 높이려 한 행동이지만 실제로는 더 큰 사회의 생존력을 떨어뜨렸어.
B는 사회의 생존력을 떨어뜨리려는 의도가 있었고, 실제로도 더 큰 사회의 생존력을 떨어뜨렸어.
그러므로 A와 B 모두 처벌을 받아야 하지만, 처벌의 강도는 A보다는 B가 높아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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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살아가면서 느끼는 불합리함들, 뭔가 정의롭지 않은 것 같은 느낌들...
그런 것들은, 이 세 가지 정의의 거리가 너무 멀기 때문은 아닐까?

이런 생각을 해 봤어.
위에서 말한 세 가지 정의, 그러니까 '관념적 정의 - 원칙적 정의 - 행동적 정의'의 거리가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사람들은 그 사회의 정의가 올바른 것인지에 대해 의문을 갖게 되는 건 아닐까 하는.

그렇다면 내가 할 일은, 우리 사회의 세 가지 유형의 정의가 어떤 모습을 갖고 있는지를 살펴보는 일일 거야.
그래야 내가 왜 이렇게 억울한지를 밝혀내지.



자, 이 세 가지 기준을 바탕으로 책에서 모자란 부분들을 채워보자.

주로 세 번째의 '행동적 정의'에 관한 이야기를 하게 될 거야.
하지만 이것 하나만을 논할 수도 없는 게, 사실 저 세 가지 정의들은 서로 꽤 싶은 관련을 갖고 있기 때문이야.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 나갈지도 나에게 주어진 숙제겠지.
뭐... 그 정도 질문에는 답할 수 있어야 정신적인 위인이 될 수 있지 않겠어?

by 초란군 | 2010/05/22 07:16 | 데이터리즘 | 트랙백 | 덧글(2)

최종 목적(1)

결국 데이터리즘을 실생활에 적용하고 연구의 성과를 얻기 위해서는, 하나의 사회가 어느 사회에 포함되어 있는지를 알아내는 것이 중요하다.


이것을 밝혀낼 방법은 무엇인가?
하나의 개인이 한 가지의 사회에만 포함되어 있으리라는 법은 없다.
여러 가지 사회에 복합적으로 연결되어 있을 것이 분명하다.


수형도 형태로 표현할 수 있을까?
최대한 간략하게 이야기한다면, 그렇게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어떻게든 그래픽 형태로 표현할 수는 있을 것 같다.
그림은 조금 나중에 그려보도록 하자.

하지만 단순한 그림으로 나올 수는 없다. 사람은 여러 개의 사회에 복합적으로 소속되어 있기 마련이므로.
데이터리즘의 최종적인 목적 중 하나는 그것이겠다.
-- 그 그림을 만들어내는 것 --

개인은 하나의 면적을 가진 점으로 표현할 수 있다. 그 점들이 모이면 하나의 그림이 되는 것이다.
그 그림을 하나씩 완성해가다 보면, 인류 전체의 그림이 그려질 것이다. 40억개의 점들이 모인 하나의 그림을 말이다.
그 완성된 그림을 모아서, 그림의 형태를 계속 업데이트해 가는 것이 데이터리즘의 최종 목적 제 1번이다.

물론 개인이건 사회건 간에 여러 사회에 동시에 포함되어 있을 수 있다. 이런 경우에, 개인이나 사회가 그 사회 안에 얼마나 깊게 포함되어 있는지를 농도로 표현해줄 필요가 있다.
그 농도를 판별하는 방법에 대해서도 연구를 계속 해봐야겠다.
한 개인이나 사회가 다른 사회에 얼마나 깊게 포함되어 있는지, 그가 포함되어 있는 사회가 그 개인이나 사회에 얼마나 많은 영향을 주는지 측정을 해야 하는 것이다.
휴우. 이 부분도 꽤나 까다로운 이야기 같은데?
어떻게 판별해 낼지는 다른 노트에서 생각해보자.



모인 그림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
이 말은 바꾸어 말하면, 그 그림을 어떤 색깔로 그려 나갈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다.
개인의 정의의 성향을 파악한다.
그 개인이 포함된 사회의 정의를 파악한다.
그 사회가 포함된 사회의 정의를 파악한다.
그런 식으로 모든 사회의 정의의 형태를 파악하는 것이 최종적인 목적 중 하나이다.




정의의 형태를 파악하면 그걸로 무엇을 할 것인가?
그 답을 하기 전에, 서로 다른 정의가 어떤 식으로 충돌하는지에 대한 패턴을 구해내야 한다.
그 패턴을 구해내면, 전체 사회들이 얽혀있는 모델 안에서 사회들이 충돌하는 요인들을 밝혀낼 수 있다.
사회가 충돌하는 요인을 밝혀내면, 그 요인들을 통해 어느 사회가 더 정의로운지 밝혀낼 수 있을 것이다. 아니, 꼭 그렇지만은 않다. 어느 사회가 더 정의로운지를 밝혀낸다는 것은 덜 정의로운 사회를 부정한다는 이야기가 되기 때문에.
덜 정의로운 사회라 해도 존재 가치는 충분히 있다.


사회의 정의로움을 밝혀내고 덜 정의로운 사회를 부정하자는 것이 이 연구의 목적은 아니다.
오히려 이 이론을 제대로 적용하기 위해서는, 사회의 성향 자체가 정의로운지 아닌지를 밝혀내는 것이 아니라 그 사회가 행하는 행동이 정의로운지를 밝혀내야만 한다.
아... 결국 내가 알고 싶은 것은 행동의 정의로움이었구나.

개인과 사회의 관계를 밝혀내는 것은, 행동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계산해내기 위한 것일 뿐이었다.
결국 내가 알고 싶은 것은, 사회가 행하는 행동 자체가 정의로운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두 가지 시점에서 봐야만 한다.
- 고정적인 시점 : 사회의 기본적인 성향과 소속
- 유동적인 시점 : 사회의 행동이 정의로운가 아닌가



자, 다시 생각해보자.
두 가지 시점은 어떤 관계를 갖는가?
"이런 성향의 사회가 이런 행동을 하면 정의로운가?"라는 문제로 귀결된다.

사회의 정의로움은 판단의 대상이 아니다. 그저 그 사회의 행동을 구분하기 위한 기준이 될 뿐이다.
가난한 사람들이 전재산을 100만원을 털어 기부하는 것과,
부자가 용돈 100만원을 털어 기부하는 것은,
그 무게가 다르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이다.

행동 자체의 정의를 판단하기 전에, 그 행동의 주체가 어떤 성향을 갖고 있고 어떤 영향력을 갖고 있는지를 먼저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같은 행동을 하더라도, 주체가 누구냐에 따라 사회적인 영향력이 달라질 수밖에 없기 때문에.

자, 그러면 조사해야 할 데이터의 범위를 정할 수 있겠다.
1. 사회의 형태를 파악하기 위한 데이터
2. 행동의 결과를 파악하기 위한 데이터

크게 이 두 가지의 데이터를 모으면 되는 것이다.

1. 사회의 형태를 파악하기 위한 데이터
이 데이터는 고정 데이터다. 물론 끝없이 업데이트는 되겠지만, 기본적으로는 입력한 뒤에 변형되지 않는 고정값이라는 거다.

2. 행동의 결과를 파악하기 위한 데이터
이 데이터는 그때그때 다른 유동적 데이터다. 아직 벌어지지 않은 사건에 대해서도 미리 예측해 입력할 수 있다.


그렇다면, 각각의 내용을 알기 위해 입력해야 하는 데이터는 어떤 것들인가?
1. 사회의 형태를 파악하기 위한 데이터
- 최소 투자자에게 분배되는 잉여자원의 양
- 최소 투자자에게 공유되는 정보의 수준
- 의사 결정권자를 처벌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 구성원의 최하 레벨

빠진 부분들이 있다. 이 데이터만으로는 그 사회가 무엇을 목적으로 이루어진 사회인지에 대해서 알아보기 힘들다.


2. 사회의 행동을 평가하기 위한 데이터
- 본능적인 욕구가 행동에 미친 영향의 정도(인간의 경우에는 성욕이 포함되어야 할까?)
- 사회적 지위를 높이기 위한 욕구의 정도
- 잉여물자에 대한 욕구가 행동에 미친 영향의 정도
- 행동할 당시의 감정의 기복 수준


by 초란군 | 2010/05/02 22:35 | 트랙백 | 덧글(0)

인생이 비틀어져있다.

혼자서 살게 된지 1개월이 지났다.
마음을 추스리는 기간 치고는 그냥저냥 나쁘지 않았다고 생각하지만, 뒷처리를 해야 할 시간이 되니 역시 뭔가 착잡한 것도 사실이다.


분명 내 인생은 어딘가 크게 비틀어져있다.
밑도 끝도 없이 외롭고, 가난하다.

하지만 그런 것에는 충분히 익숙하다.
나름대로 각오를 한 상태니까 그다지 억울하지도 않다.
도도하게 살 것이므로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고 혼자 살아가겠다는 말, 나는 실천에 옮기고 있으니까.


정말 분한 건 그게 아니다.
나를 정말로 기운 빠지게 하는 건, 다름 아니라...

이 모든 문제들의 해결책이 이미 내 손 안에 있다는 거다.
문제가 무언지 알고, 해결책이 무언지도 안다. 그게 굳이 자존심에 거슬리는 일도 아니다.
해결할 능력이 없는 것도 아니다. 준비를 안 한 것도 아니다.
그냥, 움직이면 된다. 생각한 대로 움직이면 된다.
그런데 그게 이렇게도 분하고 억울하다.


알고 있기 때문에 할 수 없다.
그게 나란 녀석의 이상한 속성 중 하나라는 사실을 언젠가부터 눈치채고 있었다.
끝이 보이는 일은 하고 싶지 않다.
나라는 존재를 알고 싶지 않다.
세상을 미리 알고 싶지 않다.
이상하지만, 그렇다.
그걸 알게 되고, 그 길로 가게 되는 순간 자유롭지 못하게 되어버릴까 무섭다.
자유롭기 위해서 생각을 하고, 그래서 결론을 내렸는데도... 그 길로 가는 순간 자유롭지 못하게 될 것 같다. 그게 무섭다.


그럼에도 움직여야 한다.
움직이지 않으면, 나를 믿는 사람들을 배신하는 결과가 되기 때문에.
마음이 무겁다.
한없이 가볍기 때문에 이렇게나 무겁다.

진실을 파헤친다는 건, 그런 무게를 떠안게 된다는 의미였다.
그걸 몰랐다. 어리석었다.

by 초란군 | 2009/10/14 16:12 | 뭔가 뚱한 일기장 | 트랙백 | 덧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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