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 비틀어져있다.

혼자서 살게 된지 1개월이 지났다.
마음을 추스리는 기간 치고는 그냥저냥 나쁘지 않았다고 생각하지만, 뒷처리를 해야 할 시간이 되니 역시 뭔가 착잡한 것도 사실이다.


분명 내 인생은 어딘가 크게 비틀어져있다.
밑도 끝도 없이 외롭고, 가난하다.

하지만 그런 것에는 충분히 익숙하다.
나름대로 각오를 한 상태니까 그다지 억울하지도 않다.
도도하게 살 것이므로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고 혼자 살아가겠다는 말, 나는 실천에 옮기고 있으니까.


정말 분한 건 그게 아니다.
나를 정말로 기운 빠지게 하는 건, 다름 아니라...

이 모든 문제들의 해결책이 이미 내 손 안에 있다는 거다.
문제가 무언지 알고, 해결책이 무언지도 안다. 그게 굳이 자존심에 거슬리는 일도 아니다.
해결할 능력이 없는 것도 아니다. 준비를 안 한 것도 아니다.
그냥, 움직이면 된다. 생각한 대로 움직이면 된다.
그런데 그게 이렇게도 분하고 억울하다.


알고 있기 때문에 할 수 없다.
그게 나란 녀석의 이상한 속성 중 하나라는 사실을 언젠가부터 눈치채고 있었다.
끝이 보이는 일은 하고 싶지 않다.
나라는 존재를 알고 싶지 않다.
세상을 미리 알고 싶지 않다.
이상하지만, 그렇다.
그걸 알게 되고, 그 길로 가게 되는 순간 자유롭지 못하게 되어버릴까 무섭다.
자유롭기 위해서 생각을 하고, 그래서 결론을 내렸는데도... 그 길로 가는 순간 자유롭지 못하게 될 것 같다. 그게 무섭다.


그럼에도 움직여야 한다.
움직이지 않으면, 나를 믿는 사람들을 배신하는 결과가 되기 때문에.
마음이 무겁다.
한없이 가볍기 때문에 이렇게나 무겁다.

진실을 파헤친다는 건, 그런 무게를 떠안게 된다는 의미였다.
그걸 몰랐다. 어리석었다.

by 초란군 | 2009/10/14 16:12 | 뭔가 뚱한 일기장 | 트랙백 | 덧글(1)

인도주의, 인도주의 좋지요...

아까 전에 진보 뭐시기 연합인가 하는 뉴또라이 글에 달았던 답글이지만,

애써 적은 거 아깝기도 하고 해서 그냥 새 글로 복사해 본다.

 

뭐, 굳이 해설까지는 달지 않겠다.

알아서들 이해하고 알아서들 해석하시길.

 

 

//---------------------------------------------------------------//

인도주의, 아 인도주의 중요하지요. 차는 인도로 사람은 차도로.

 

 

아 참, 생각난 김에 나 사는 집 이야기 좀 해 드리리다.

 

 

난 빌딩 구석에 세들어 살고 있소. 5층 빌딩인데, 난 반지하에 살고 있다오.

뭐, 좋게 말하면 주상복합이고, 나쁘게 말하면 그냥 반 상가건물인 셈이오.

말이 좋아 주상복합이지, 1층 상가만 삐까뻔쩍했지 나머지 층은 수압이 낮아 물도 잘 안 나오고 화장실 변기도 죄 고장나 있어 참 살기 그렇지요.

특히나 내가 살고있는 건물 뒤쪽 입구의 반지하방으로 말할 것 같으면, 비 오면 비가 넘쳐들고 창문 열면 정화조 냄새가 그냥 술술 풍겨들어온다오. 창문 바로 앞의 주차장은 뭔 놈의 차가 그렇게도 들락거리는 지 원... 게다가 얼마 전부터는 이놈의 1층 상가에서 뭔 이벤트 행사인가를 한답시고 도우미 아가씨들을 불러 지랄 땐쓰를 추시는데... 차라리 내 집 창문 앞에서 하면 아가씨들 치마 속이라도 보겠소만 내 집 창문이 주차장 쪽으로 뚫려있어 볼 형편도 못 된다오.

 

 

이놈의 건물이 그런데, 작년 초에 건물주가 바뀌었다오.

이전 건물주는 그래도 사람이 말귀는 통하는 인간이라, 화장실 물 새면 고쳐도 주고 새로 이사오면 벽지도 갈아주고 했었다오. 대신 관리비를 조금 더 붙였지만, 이것저것 고쳐주고 손봐주는 거에 비하면 싼 편이라 그냥 보험삼아 봐 주었다오.

그런데 이번 건물주는 인간이 참으로 인간이 야매인지라, 돈 되는 1층 상가만 우대하고 나머지 층 사람들은 아주 사람으로 보지도 않더이다.

 

엘리베이터도 없는 놈의 건물 옥탑방에 노인네와 장애인들을 쳐박아놓지 않나, 누군가에게 돈이라도 쳐받았는지 집에 들어오는 전기와 가스를 기본료도 오지게 비싼 상가용으로 바꿔놓더구려. 가정용은 누진세가 많아서 전기 많이 쓰는 1층 상가에 불리해서라나 뭐라나? 그럼 1층 상가만 바꾸면 될 것을 왜 건물 전체를 바꿔놓는 건지 참 이해를 할 수가 없더구려.

뭐라고 항의라도 할라치면 바로 1층 상가의 직원들이 몰려와 집안을 깽판쳐놓고 가기 일쑤라, 이거 맘놓고 뒷담화도 못 깔 지경이라오.

 

얼마 전에는 갑자기 건물 안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22만원씩을 뜯어가더이다.

건물 바깥을 녹색 페인트로 새로 칠한다는 거요. 그것도 한 면이 아니고 건물 4면을 죄다.

사는 우리들이야 기가 차지요. 아니, 5층 건물에 엘리베이터도 없는 주제에 건물 바깥을 삐까뻔쩍하게 칠하면 대저 뭣에 쓸 것이오?

게다가 하필이면 녹색이 뭐요 녹색이? 촌스럽게시리.

사실 우리 건물이 내부 구조도 그렇고 살기는 좀 지랄맞아도, 겉보기는 제법 자연미가 나는 게 이쁜 건물이었다오. 동네 사람들도 "저 집이 그래도 이쁘긴 하지"라고 인정 좀 해주는 판이었는데, 이게 뭐하자는 짓인지 모르겠소.

 

그래서 "걍 놔두는 게 훨 이쁘오. 괴상한 칠 좀 하지 마시오"라고 따졌더니만, 다음날 아침에 보니 현관 앞에 죽은 고양이가 한 마리 놓여 있더이다. 누구 짓인지 뻔하지만 증거가 없어 참고 있었지만...

그 다음날 직접 건물주 사무실에(1층에 있소) 쳐들어가서 "아니, 그 돈을 건물주가 내야지 왜 우리가 내오?"라고 따졌다가 1층 상가 직원들에게 싸다구를 맞았소.

거 참 이해할 수 없는 게... 건물주와 상가 주인들이 대체 뭔 관계이기에 직원들이 나서서 이 사단을 내는지 모르겠소. 허 참.

 

 

 

아 참, 이 이야기를 하려던 게 아니었는데 이야기가 삼천포로 샜구려.

우리 건물 옆에는 2층짜리 허름한 집이 하나 있다오.

60년대쯤 지은 건물이라 아주 다 무너져가는데도, 집주인이 엔간히 짠돌이에 똥고집이라 고칠 생각도 안 하고 있소. 제대로 된 창문도 하나 없어서, 도무지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 길이 없소.

들리는 소문으로는, 건물주가 깡패라서 안에다 무슨 노가다장 같은 걸 만들어서 사람들을 가둬놓고 노예처럼 부려먹고 있다 하오.

 

우리네 이전 건물주는, 아무래도 옆집에 그런 건물이 있으면 땅값이 떨어까봐 무서웠는지 옆집을 겉모양이나마 좀 고치라고 돈도 좀 대주고 그랬었소. 옆집 주인이 엿바꿔먹었는지 어쩐지는 모르겠지만.

그런데 이번 건물주는 건물을 사자마자, 아주 옆집 자체를 없애버리겠다고 공언을 하고 다녔었지요.

 

처음에는 이 인간이 깡다구가 좀 있어서 그러는 줄 알았소만, 알고보니 그것도 아니더구려.

대놓고 욕하면 맞을까봐 관리인들 시켜서 옆집 앞에 쓰레기를 갖다놓는 게 다였다니... 참 어이가 이단옆차기를 쌔려맞더구려.

못된 놈이 찌질하기까지 하다고, 그저 하는 게 뒷담화 까는 거라니 내 참.

 

그런데 그놈의 뒷담화도 까려면 제대로나 깔 것이지, 괜히 1층 조선호프에서 술취한 김에 지 자랑하며 언성 높이다가 그 뒷담화를 옆집 주인이 들어버리고 만 거 아니겠소?

원래부터 종씨 가문이 서로 못 잡아먹어 안달인 사람들이더라는 건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여튼 그 뒷담화를 바람귀에 주워들은 옆집 주인이 아주 대박으로 열이 뻗쳤었더라오.

원래부터 깡패종자라 성깔 더러운데, 잘못 건드린 셈이었지요.

 

그러던 와중에 1층 인테리어집에서 키우던 개 한 마리가 옆집 주인에게 붙잡힌 사건이 생겼소.

뭐, 이전 집주인이야 옆집 주인과 그렇게까지 사이가 나쁘진 않았기에, 기왕 서로 개 키우는 거 접이나 붙여서 숫자나 불려보자는 속셈으로 가만 놔두고 있었던 거였다오.

그런데 사람이 밉게 보이면 개도 밉게 보인다고, 싸가지없는 주인집의 개 한 마리가 자기 집에 응꼬를 쳐 갈기고 있으니 이게 아름답게 보였을 리가 없지 않겠소? 복날도 가까워졌겠다, 앗싸리 몸보신이나 할 생각으로 잡아간 게지요.

이게 옥탑방 할머니네 개 같으면 잡아잡숫던 말던 상관 안 했겠지만, 하필이면 우리 건물 우대고객인 1층 인테리어집 개였으니 집주인이 덩달아 길길이 날뛰었죠. 그래도 무서워서 직접 딴지는 못 걸겠고... 열은 받고...

그래서 집주인이 택한 방법이란 게, 파출소에 신고를 하는 거였다오.

 

 

아 참, 웃기지도 않는 사건이 또 하나 있었소.

파출소 강아지 이야기인데, 파출소에서 키우던 쪼맨한 치와와가 옆집에 감히 침입(?)을 했다가 옆집 주인에서 붙잡혔더라는 거였소.

이 파출소라는 데가 제법 웃기는데, 동네 지켜준답시고 여기저기서 삥을 뜯어싸는 게 솔직히 깡패 못지 않은 집단이었다오.

그나마 얼마 전에 오씨 뭐시기인가 하는 소장이 들어오고는 삥 뜯는 게 좀 덜해지긴 했지만, 이게 대저 치안을 지키는 인간들인지 치안을 말아먹는 인간들인지 알 수가 없는 곳이었지요.

 

맘에 안 들면 어쩌겠소?

명색이 경찰인데, 밉보였다가는 뭔 덤터기를 씌워 잡아갈 지 모르니 일단 까라면 까는 게지요.

그런데 이 파출소 인간들을 못 잡아먹어 안달인 인간이 있었으니, 바로 우리 옆집 주인이었다오.

뭐 당연한 이치겠지요. 깡패가 경찰 좋아하겠소?

게다가 딴에는 협객 어쩌고 주장한다는 소문도 들려오는 걸 보니, 썩어빠진 경찰이 우스워 보이기도 했을 것이오. 그래봤자 깡패와 썩은 경찰이지만.

 

그러던 파출소의 개 한 마리가 이 옆집을 기웃거리다 붙들렸단 말이오.

파출소 입장에서야 뭐 이러나 저러나 개 한 마리니까 알 바 아니었겠지만, 그래도 모가지 뻣뻣~하게 세우고 다니던 동네 눈치라는 게 있어 가만 놔둘 수도 없더라는 거였지요.

 

그래서 고민 끝에 옆집 주인과 쇼부를 치러 보낸 게, 이전 파출소장이었다오. 정확히 말하면 이 전 전 파출소장이지만.

그런데 이 화상이 가서 뭔 쇼부를 쳤는지 고개를 땅바닥에 쳐박았는지, 의외로 옆집 주인이 앗쌀하게 개를 내주었더란 말이오?

 

옆집 주인 왈, "사람이 밉지 개가 밉나, 개가 뭘 알겠소. 인도주의적인 입장에서 걍 데려가시오"라고 했다더라오.

 

 

이제 제대로 돌아버린 게 우리 집 주인이었지요.

"기왕 신고하는 거, 이 새끼 콩밥 좀 먹어봐라"라는 심보로 애써 파출소에 SOS까지 때렸더만, 파출소 개까지 잡혀갔다질 않나... 파출소에서는 전 소장까지 보내서 개를 데려왔다지 않나...

그렇다고 나도 찾아가서 굽신거리자니 자존심이 허락을 못 하고, 가서 쇼부를 치자니 맞을까봐 무섭고...

 

결국 했다는 게, 1층 상가 중에서도 목청 좀 크다는 조선호프 사장 시켜서 "인도주의! 인도주의!"라고 소리 좀 질러준 게 다였더라지요.

아니나 다를까, 옆집 창문이 드르륵 열리더만 "조까라 마이싱!"이라는 딱 한 마디 들리고 말더구려.

지켜보고 있는 나야 뭐 그냥, 피식 해야지 어쩌겠소?

 

 

사실 내 생각을 말하자면... 파출소집 치와와는 잡아봤자 복날 입가심거리도 안 되지만, 1층 인테리어집 똥개는 이게 살이 제법 실하더란 말이오? 그러니까 아마도 이 똥개는 잡아먹던가, 아니면 깽값이라도 받아내고 돌려주지 않을까 싶소.

 

참 웃기는 세상이오. 나쁜 놈이 못된 놈보고 니가 악당이네 뭐네 한다고 지가 깨끗해지는 게 아닌데 말이오... 세상 참.

난 그냥 이 동네 분위기나 인터넷에 끄적끄적 올려보고, 심심하면 인증샷이라도 하나쯤 찍어 올리는 게 다라오.

 

어쩌겠소.

 

내가 뭔 힘 있겠소?

by 초란군 | 2009/08/10 19:31 | 뭔가 복잡한 주절거림 | 트랙백 | 덧글(0)

[데이터리즘] 중 - [사회의 범위] 파트 일부.

(전략)

너무 추상적으로 이야기했나?
그렇다면 실제 사회의 모습을 살펴보자.
주) 미리 말해둘 것은, 모든 분류는 0/1의 데이터로 표시될 수 없다는 것이다. 완전히 0이 될 수 있고 완전히 100이 될 수도 있지만, 1~99의 중간 값이 존재할 수 있다는 점에 주의하자.



다시 커피숍 안으로 돌아가보자.
커피숍 안에는 어떤 사회가 있을까?


@ 나라는 개인이 만든 사회가 있다.
나와 함께 앉아있는 누군가는 나와 생각을 공유하는 사람으로, 가까운 사회에 포함될 수 있을 것이다. 거리상으로도 가깝지만, 같은 자리에 앉게 된 것은 다분히 의도적이다. 대화를 나누고 싶다는 이유로 그를 이 자리에 불렀기 때문이다.
(의도적으로 모인 사회)


@ 내 옆 테이블에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현재 나와 생각을 공유하고 있지는 않지만, 나의 목소리가 닿는 범위 내에 있으므로 내가 말을 거는 행위에 의해 나의 사회와 직접적인 관계를 가질 수 있다.
(정보의 직접적인 전달 범위 안에 존재)


@ 그런 테이블이 이 방 안에 총 14개가 있다.
그러므로 내 주변에는 14개의 테이블 사회가 존재한다.


@ 이 커피숍은 흡연석과 비흡연석의 두 개의 방으로 나뉘어 있다.
비흡연석은 20여개의 테이블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므로 이 커피숍은 14개의 흡연석 테이블 사회와 20개의 비흡연석 테이블 사회로 구성된 셈이다.


비흡연석과 흡연석은 방음벽으로 구분되어 있기 때문에, 한 쪽 방에서 하는 말을 다른 쪽에서는 들을 수 없다. 따라서 이 두 개의 사회는 원칙적으로는 분리되어 있는 사회인 셈이다.
(정보의 직접적인 전달 범위 밖에 있다)


비흡연석 사회와 흡연 사회는 서로 적대적인 관계를 갖고 있다. 비흡연자들은 담배 냄새를 맡고 싶지 않다는 이유로 그 자리에 앉았고, 흡연자들은 담배를 피우고 싶단 이유로 그 자리에 앉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흡연자들은 "흡연"이라는 공통적인 이익을 위해 하나의 사회를 이루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흡연자 테이블 사회가 의도적으로 만들어졌다고만은 할 수 없다. 그들이 같은 방 안에 있게 된 것은 다분히 우연적인 결과로, 관계를 갖기 위해 의도적으로 그 자리를 택했다고는 보기 힘든 것이다.
(공통의 이익을 갖고는 있지만, 직접적으로 관계를 갖지는 않는다. 사회 자체가 의도적으로 구성되지도 않았다)


@ 커피숍에는 4명의 직원이 일을 하고 있다. 이 직원들도 하나의 사회를 이루고 있다.

이 직원들은 다분히 의도적으로 사회를 이루고 있다. 월급이라는 공통적인 목적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직원들이 함께 일하게 된 것이 의도적이라고는 볼 수 없다. 직원 사회를 이루게 된 것은 전적으로 사장의 의도였을 확률이 높다(친한 친구를 아르바이트로 소개시켜줬을 수는 있지만).
그렇지만 이 직원들은 직접적으로 관계를 갖는 사회를 이루고 있다. 서로 협동해서 "커피숍의 원활한 운영"이라는 공통의 목표를 이루어야 하기 때문이다.
(공통의 이익을 갖고, 직접적으로 관계를 갖는다. 하지만 사회 자체가 의도적으로 구성되지는 않았다)


이 직원들에게는 중요한 임무가 있는데, 바로 커피숍의 고객들을 관리하는 것이다.
그들이 고객보다 위에 있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그들은 고객의 행동을 제약할 수 있는 상당한 영향력을 갖고 있다. 고객은 그들의 직간접적인 요구를 들어주고, 그들 또한 고객의 직접적인 요구사항에 응답할 의무가 있다. 그래야만 커피숍의 원활한 운영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다른 사회를 컨트롤할 수 있는 직접적인 영향력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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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여기서 데이터리즘의 연구에서 가장 중요한 내용을 체크할 수 있게 된다.
그들에게는 어떤 정의가 적용되고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다.


이제부터 그 검증 작업에 들어가 보자.
안정되어 있는 이 사회에 사건을 몇 개 터뜨려보면 된다.


1. 흡연실에 있던 사람을 담배를 든 채로 비흡연석으로 보내보자.
2. 고객 하나가 담배를 든 채로 커피숍에 들어오게 해보자.
3. 흡연실의 테이블 중 하나에 싸움을 일으켜보자.
4. 비흡연식의 테이블 중 하나에 싸움을 일으켜보자.
5. 고객 하나가 돈을 지불하지 않으려 싸우게 만들어보자.
6. 커피숍에 거지 하나를 들여보내서, 흡연실의 고객에게 구걸을 하게 만들어보자.
7. 커피숍에 거지 하나를 들여보내서, 비흡연실의 고객에게 구걸을 하게 만들어보자.



이런 사건을 터뜨렸을 때, 누가 어떤 행동을 택하게 될까?
물론 이 결과로 나올 행동에는 확률이 존재한다.
그러므로 이 확률을 정확히 측정하기 전에는 정확한 행동값을 얻어낼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 결과들이 어떤 행동을 가져와야 하는지에 대한 당위성은 정해져있다.


1번의 행동의 경우를 생각해보자.
주) 어째서 그 상황이 생겨났는지의 이유는 데이터리즘의 연구 영역이 아니다. 이 이유에 대해서는 다른 파트에서 밝히고 있다. 데이터리즘은 결과론과 그 결과의 당위성, 즉 정의론에 대한 이야기다.


이 경우, 직원이 담배를 든 사람을 흡연실로 돌려보내는 것이 가장 일반적인 행동이다. 그 행동이 직원의 자발적인 행동으로 실현되려면, 직원이 그 행동을 직접적으로 목격할 수 있는 범위 안에 있어야 한다.
(직접적인 인지 범위 안에 포함)

만약에 직원이 그 상황을 보지 못했다면, 비흡연실의 누군가가 그 비매너 행위를 직원에게 말해 처리하도록 할 수 있다.
(직접적인 인지 범위 안에 포함 - 다른 사회에 정보를 알림)

때로는 비흡연실의 누군가가 그 행동을 한 사람을 직접적으로 비난할 수도 있다.
(직접적인 인지 범위 안에 포함)

하지만 그런 경우에는 두 사람간의 싸움이 벌어질 수 있다. 직원이 지적했을 때에도 물론 싸움이 벌어질 수 있지만, 손님이 지적했을 때는 싸움이 벌어질 확률이 높아질 수도 있다. 물론 지적한 손님의 인상이 험악하다면 그 확률이 낮아질 수도 있다.
(권위의 차이)


사실, 이러한 행동이 반드시 일어난다는 보장은 없다.
여기에는 또 다른 변수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담배를 들고 나온 사람이 곧 죽을 것 같은 노인이라면, 관련된 사람들이 그 문제를 해결할 의지를 보일 확률은 크게 줄어들게 된다.
(특수성의 인정)

담배를 들고 나온 사람이 이 커피숍의 사장에게 빚을 받으러 온 사람이라면, 직원들은 이 사태에 대해 입을 다물 확률이 높다. 커피숍의 다른 손님들은 그 사실을 모르기 때문에 행동을 할 확률이 여전히 존재하지만.
(권위의 차이)


다른 경우의 수도 있다. 담배를 들고 나온 사람을 아무도 보지 못했을 때이다. 그러면 아무도 제재를 가할 수 없고, 어떤 행동도 벌어지지 않을 것이다. 이런 경우에, 그 사람의 범죄 사실은 있으나 없으나한 행동이 되어버린다.
(인지되지 않은 행동)




이 사건은, 한 사회의 이해관계가 다른 사회의 이해관계와 정면으로 충돌할 때를 의미한다.
이해관계가 어떤 방식으로 충돌하는지에 대해서는 조금 나중에 논하기로 하고, 일단 이 상황 자체를 분석해보자.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이 상황에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결과들은 무엇일까?
1. 직접적인 인지 관계에 있는 사회가 택할 수 있는 행동 예상
2. 간접적인 인지 관계, 즉 정보의 전달 범위가 행동에 미칠 수 있는 영향 예상
3. 권위가 다른 사회에 미칠 수 있는 영향력의 예상
4. 영향력을 방해하거나 증가시킬 수 있는 특수성의 정도



하지만 이러한 모든 행위의 기반에는 특정한 사회 정의가 깔려있다.

바로 "비흡연실에서는 담배를 피우면 안 된다"는 것이다.
이는 일종의 사회 규범으로, 그 사회의 특징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우리가 가장 먼저 알아내고 정리해야 하는 것은 바로 이 "정의의 형태"이다.
왜냐면 그 사건을 벌인 사람의 정의가 커피숍 사회의 정의와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완전히 다르지 않더라도, 그 정의가 그 사람에게 미친 영향력이 너무 작았기 때문에 그와 같은 사건이 벌어졌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에 누구의 정의가 옳은 것인지를 밝혀내야 한다.
커피숍 담배 사건과 같이 다분히 규범적인 사회 안에서 벌어진 일탈행동이라면 그 사회의 규범을 적용시키는 것이 정당할 수 있다.


과연 그럴까?
어째서 그것이 정당해야 하는 것인가?
어째서 그 사람의 행동은 지탄받아야 마땅한 것일까?

그 행동을 벌인 사람은, 나름대로의 정의를 갖고 있는 사람일 수도 있다.
담배를 피우는 것이 사회에 커다란 도움이 된다고 주장하는 사람일 수도 있다. 혹은 냄새가 안 나고 인체에 해가 없는 담배를 개발해서 그것을 홍보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일탈행위는 반드시 지탄받아야만 하는 것인가?


그것을 밝히기 위해서는 정의의 기준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부터 이야기해야 한다.
정의가 반드시 가져야만 하는 기준을 시작점으로 생각한다면, 그 행동의 정당성을 생각할 수 있는 것이다.
정의의 기본 조건에 대해서는 앞에서 충분히 논의했으므로 자세한 설명은 생략하도록 하겠다.

이 사건이 커피숍 정의에 어긋나는 가장 큰 이유는, 사회의 생존력 자체를 위협하고 있기 때문이다.
비흡연석에서 담배를 피우는 행위는 비흡연자들의 건강에 직접적인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따라서 이 행위는 비흡연자 사회의 생존력을 떨어뜨리는 결과가 된다.
또한 이 행위는 커피숍 사회 자체를 망하게 할 수도 있다. 흡연석 하나도 못 지키는 커피숍은 운영을 허술하게 하는 것이라는 인식이 퍼지게 되면, 커피숍의 매출이 떨어질 수 있는 것이다.
(사회의 생존력 저하)



그러므로 이 흡연자는 정의롭지 못한 행동을 한 것이다.

과연 그럴까?


그렇다면 다른 질문을 더 던져보자.

만약에 담배를 피우기 시작한 것이 한 사람이 아니고 하나의 집단이라면?
비흡연실에 앉아있는 비흡연자가 달랑 한 테이블이었다면? 아니면 비흡연자 테이블이 아예 비어 있었다면? 흡연자들이 너무 많은 바람에 흡연실에 자리가 없어서 비흡연실까지 나와 버린 거라면?
(사회 구성원 수의 차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흡연실로 나온 흡연자들은 정의롭지 못한 것인가?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흡연자들은 흡연석을 지키고 있어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내 개인적인 의견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그 이유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당연히 지켜져야만 하는 정의이기 때문에?
그런 당위성은 언제나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주관적인 당위성의 주장은 다른 이해관계를 갖는 사람에게 공격받을 수밖에 없다.
그 공격으로부터 나의 정의를 지키기 위해서는, 정당한 데이터를 밝히는 것이 옳다.
그러므로 나는 데이터리즘의 연구를 통해 이 당위성을 실질적인 데이터로 표현하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정의가 반드시 지켜진다고도 할 수 없다.
혹자는 그것을 사회 정의의 유연성이라고 말한다.
정의의 유연성은 항상 존재하고 있다. 따라서 데이터리즘은 이 정의의 유연성에 대해서도 밝혀내어 그 유연성의 정당함에 대해서도 이야기해야만 한다.






간혹 이런 정의는 묘한 사람들에 의해 깨지기도 한다.
아침에 커피숍을 오픈하기 위해 청소를 하던 직원이 비흡연석에서 담배를 피우기도 하는 것이다.
손님이 아무도 없으니 상관은 없을 것이고, 사장에게 들키지만 않으면 딱히 욕을 먹을 이유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직원은 정의롭지 못한 행동을 한 것인가?
눈에 안 보였으니 상관없는 것 아닌가?
(인지의 여부)



주) 결과적으로, 데이터리즘은 "인지되지 못한 행동은 정의의 계산식과는 관계없다"는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그 행동이 나중에라도 아무에게도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면, 정말로 상관이 없다. 개인적인 양심의 문제이기는 하지만, 데이터리즘의 연구 범위는 아니다. 하지만 행동이 아무에게도 영향을 미치지 않을 확률은 꽤 낮기에, 인간은 평소에도 그렇게나 조심하고 살 수밖에 없는 것이다.


(후략)

by 초란군 | 2009/08/10 07:00 | 데이터리즘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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